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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박재은의 음식 이야기] 봄 스테이크와 허브 티

작성자 허브자연(ip:)

작성일 2007-10-06 21:16:05

조회 425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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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용

 사주를 보면 나는 불이 많고, 또 흙이 많은 여자라 한다. 그래서인지 내 옆에서는 식물이 제대로 견뎌낸 적이 없다. 어릴 적 책상 위에 엄마가 놓아 준 바이올렛 화분이나 친구들에게 받은 생일 꽃다발, 한잔 술김에 지나다 꺾어 온 아카시아 한 가지도 내 곁에 두면 금방 시들어 말라버리니.

그런데 사실 사주니 뭐니 하는 것은 다 핑계다. 나는 식물에 정을 붙여 본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. 하긴 뭐 정 붙이지 않고 살아 온 것이 비단 식물뿐이겠느냐마는 ‘반응’을 관계의 척도로 삼는 내게 말도 소리도 못 내는 식물의 반응은 너무 답답한 것이었음 이리라.

그러던 어느 날, 부안의 내소사에 다녀 온 남편이 이런 말을 툭 던졌다. “식물한테 잘해라. 그 애들이 당신 말 다 듣고 느낀단다.” 요는 내소사의 어느 암자 마당에 세월이 오랜 감나무가 있는데, 몇 해를 연달아 피고 지지 않길래 스님은 말씀하셨단다.

“저 놈이 올 가을에도 감을 안 주면 베어 버려야겠다.”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 가을, 감나무에는 감이 열렸고 놀라신 스님은 다시금 생명의 신비함을 깨달으셨다고 한다. 친정 엄마와 당신의 오랜 분재 사이에서도 비슷한 일이 한 차례 있었던 것을 목격한 터라 나는 식물에게 차디찼던 나의 과거(?)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.

그래서 시작한 분재. 분재라고 할 것까지 없는 소박한 화분 가꾸기지만, 그 일을 시작한 지 두어 달이 되었다. 파릇한 싹만 돋은 손바닥만한 화분을 얼떨결에 집안으로 들인 것이 불과 어제 같은데, 이제는 제법 ‘화초’테가 나도록 풍성해졌다.

비교적 기르기 쉽다는 식물부터 하나 둘 데려와서 설거지 개수대가 있는 작은 창가에 둔 것이 시작이었다. 적어도 하루에 두 번 이상은 해야 하는 설거지 시간마다 작은 잔으로 물만 졸졸 흘려주기를 몇 날, 그 것이 일과가 될 무렵부터는 분무질도 곁들이기 시작했다.

건조한 아파트에서 아침이슬 맛을 볼 수 없는 화분들을 위한 나의 서비스였다. 아침마다 반쯤 감긴 눈으로 창가에 기대 습관적으로 분무 질을 해주었다.

이제는 모닝 분무질이 잠을 깨기 위한 나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고, 긴 시간 외출 끝에 집에 들어오면 아이들(화초들) 잎이 마르지는 안았는지 만져보는 것도 나의 일상이 되었다. 자신감을 얻은 나는 허브와 작은 귤나무를 더 들여 놓았다. 또, 콩나물이나 미나리 밑동 기르기에도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.

♡ 콩나물 스테이크
스테이크라 하면 으슬으슬 몸이 추운 겨울에 들어맞는 메뉴이지만 비타민을 많이 뺏기고, 나른하여 무기력해지는 봄에도 필요하다. 특히 겨우 내 감기를 앓았다던가 새해 들어 운동량을 늘린 이들이라면 고기 한 조각으로 원기를 북돋아주는 것을 권하는 바다. 단, 봄맛이 확 돌도록 요리를 해 보자는 전제하에.

내게 봄맛이란 무언가 푸릇하고 아삭한 그런 것이니 창가에 쭉 자라고 있는 콩나물이랑 미나리 줄기가 예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. 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달궈서 다진 마늘을 볶으면 향이 돌고, 여기에 슬쩍 데친 콩나물을 넣는다. 간장 조금, 맛 술, 식초에 설탕이나 과일 청을 조금 넣어 간을 맞추고 미나리 줄기도 넣어 섞는다.

야채를 접시에 덜어내고 그 팬에 고기를 굽는데, 고기를 통 후추 뿌린 정종에 재웠다가 구우면 그 향이 좋다. 소금과 후추로만 밑간을 본 스테이크 고기를 원하는 만큼 구워서 준비된 콩나물ㆍ미나리볶음 위에 얹으면 완성이다.

고기를 조금 썰어서 스테이크 소스나 소금, 후추에 찍어 먹어도 좋지만, 씨 겨자나 고추냉이를 푼 맵싸한 간장을 만들어 곁들여도 색다르다. 여기에 함께 씹히는 콩나물과 미나리의 아삭거리는 식감이 봄맛을 보장해 줄 것이다.

♡ 허브 티
허브의 종류나 효능, 응용법에 대해서는 인터넷 검색으로 누구나 알 수 있기에 생략하도록 한다. 기본적으로 소화에 좋은 레몬 밤, 스트레스에 특효라는 페퍼민트, 숙면을 돕는 라벤더나 머리를 맑게 하는 로즈마리는 분재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가격도 만만하니 시도해 볼 만하다. 머리맡에 라벤더를 두면 잠 잘 때 코끝이 은은하고, 부엌에 로즈마리를 두면 음식냄새를 비롯한 탈취의 능력이 있어 유용하다.

특히 솔잎과 같이 화한 기운을 내며, 은은한 단향에 쓴 맛이 섞인 로즈마리는 집중력을 향상 시키고 내분비 계에서는 소화를 돕는 조력자가 된다고 하니, 한 잎 꺾어 뜨거운 물에 우려내면 나른한 봄에 마시기 딱 좋은 차가 만들어지겠다. 로즈마리 차를 연하게 우려서 냉장고에 두고 마신다면 꿀이나 레몬을 첨가해도 좋은데, 식사 후 소화제나 청량음료를 대신하여 챙기면 된다.

병아리 한 마리도 키워본 적이 없는 내가 식물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. 같은 햇빛, 같은 물을 주고 길러도 더 수월히 자라는 것이 있는가 하면 계속 신경이 쓰이게 까탈을 부리는 것도 있다는 것. 같은 배에서 나와 같은 사랑 먹고 자란 나와 남동생을 보는 것 같아 더 재미있다.

하루 이틀 물주는 것을 깜빡 했어도 묵묵히 마디를 늘려 나가는 동생에 비해 나는, 하루에도 몇 번씩 주인을 걱정시키는 마른 잎의 화초와 같았다. 나를 말려버리지 않고 물을 잘 맞춰가며 키워주신 울 엄마가 문득 큰 나무처럼 보인다.

푸드채널 ‘레드 쿡 다이어리’ 진행자 박재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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